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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018 - 백남준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

남정호

arte(아르테) 출판|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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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가격정보
전자책 정가 15,040원
구매 13,540원(10% 할인)+3% 적립
대여 7,520원(50% 할인)+3% 적립
대여 기간 : 90일
출간정보 2020.05.29|EPUB|67.21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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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미디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예술의 역사를 새로 쓴 현대예술의 혁명가




백남준 예술의 모태가 된 종로에서부터
비디오아트가 탄생하고 꽃피운 부퍼탈을 거쳐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공고히 한 소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오가며 자유롭게 사유한 그의 흔적을 따라나서다





◎ 도서 소개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장르가 된 예술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추앙받는 백남준이지만 정작 그의 이름이 한국 사회에 알려진 것은 1984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작품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전파를 타면서부터다. 이 작품명은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쓴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을 반어적으로 인유한 것으로, 전 세계에서 2500만 명이 시청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은 덕분에 백남준은 전화戰火를 피해 한국을 떠난 지 34년 만에 화려하게 주목받으며 고국 땅을 밟았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것도 잠시, 2006년 백남준이 일흔네 살을 일기로 타계하면서 관심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지금은 그의 예술 세계를 제대로 조명한 서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며, 오히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높이 인정을 받고 있다. 이에 동서양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예술을 혁신해나간 거장으로서 백남준을 재조명할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열여덟 번째 책인 『백남준』은 백남준의 흔적을 찾아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재구성한다. 특히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백남준의 일본 시절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단순히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을 개별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모티브가 된 사건에서부터 영감을 준 주변 인물들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백남준 예술의 시작과 끝을 아우른다. 저자는 문화 유목민을 자처한 백남준의 파란만장한 흔적을 따라가며 그가 관통한 격랑의 역사와 삶을 박진감 넘치게 그린다. 현직 언론사 논설위원답게 명쾌한 글쓰기로 어렵고 고루하게만 느껴졌던 현대예술을 한껏 친숙하게 설명한다. 또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라는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벗겨내고 예술가로서 백남준이 겪은 부침들을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이야기하면서, 편견과 오해로 점철되었던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바로잡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은 그의 예술 세계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코즈모폴리턴으로 살다 간 백남준,
한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를 살았던 백남준은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한곳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유목민과도 같은 삶을 꿈꾸었다. 자신의 바람대로 그는 한국, 일본,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았다. 덕분에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일제강점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윤택한 생활을 누리며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을 배운 것은 물론 현대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같은 음악가들을 접하며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경기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좌우 세력 간 폭력 사건에 휘말리면서 떠밀리듯 한국을 떠나야 했다. 홍콩에서 유학하다가 잠시 귀국한 그는 한국전쟁의 발발로 가족들과 일본의 고베로 건너갔다가 가마쿠라에 거처를 마련한다. 그곳에서 백남준은 선 사상과 조우하며 동양사상을 자신의 예술적 뿌리로 삼아 후일 유럽 사회에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주효했다고 평가받는 〈TV 정원〉과 같은 대표작들을 만들어낸다. 1956년 도쿄대학에 진학해 현대음악과 철학을 천착하던 그는 독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한다. 독일에서 백남준은 플럭서스(기존의 예술과 문화를 거부하는 실험적인 미술 운동)의 중심에 서서 기존의 예술 언어와 가치관을 뒤흔드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유럽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린다. 또한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조지 머추너스와 같은 전위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당시 백남준은 “동양에서 온 테러리스트”를 자처하며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하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와 같은 파격적이고도 난해한 공연들을 선보인다. 악기를 때려 부수거나 기괴한 소음을 들려주는 식의 퍼포먼스가 이어졌는데, 언론에서는 ‘이런 것이 무슨 예술이냐’ ‘정신병자들이 병원에서 탈출했다’와 같은 악평을 쏟아냈다. 과격한 해프너로 유럽 예술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백남준은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지를 찾아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더욱더 실험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당시 그는 문학과 미술에서 성性이 중요한 모티브로 쓰이는 반면 음악에서는 금기시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샬럿 무어먼과 함께 반라의 퍼포먼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공연한다. 두 사람은 공연 도중 외설죄로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이 사건이 다음 날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성적 금기에 대한 도발을 넘어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으로 비화한다. 법원이 두 사람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는 예술에 표현의 자유를 가져다준 기념비적 존재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비디오아트에서 위성아트 그리고 레이저아트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20세기의 다빈치

백남준은 난해하고 파괴적인 퍼포먼스만을 선보이는 단순한 괴짜가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평생을 예술에 헌신하고 삶의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살라가며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을 만큼 백남준의 관심사는 오로지 예술에 있었다. 그는 자연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과학과 종교, 동양과 서양의 문화 등 이질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융합하는 데도 거침없었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낯선 분야라 할지라도 서슴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이처럼 경계를 짓지 않으며 자유로이 사고한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다. 늘 새로운 예술을 꿈꾸었던 백남준은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매체로 눈을 돌렸고,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한 브라운관을 캔버스 삼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해체한다. 1963년 독일의 부퍼탈에서 열린 첫 번째 전시회에서 비디오와 텔레비전을 활용한 작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며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 당시 그가 선보인 작품들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새롭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상식과 통념을 뒤집어놓을 뿐 아니라 대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돕는다.



백남준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았고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는 똑같거나 비슷한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대신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것인가를 늘 궁리하며 살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혔던 창조력으로 무장한 백남준은 다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전에 없던 예술이 출현하도록 터를 닦았다. 비디오아트가 그랬고 그 뒤를 이은 위성아트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만들어낸 레이저아트도 새로운 예술을 향한 위대한 도전이었다.
- 〈에필로그〉 중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
예술로 소통하며 평화를 꿈꾼 예술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 체제로 이어진 20세기를 경험한 백남준은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사회의 추악한 일면을 목도하며 예술가로서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과 가치를 모색한다. 소통의 부재가 비극을 몰고 왔다고 생각한 그는 쌍방향 소통이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견인할 수 있으며,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가 소통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 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작품들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바이 바이 키플링〉 그리고 〈세계와 손잡고〉 같은 위성아트다. 그에게 인공위성은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였기에 작품을 위한 오브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이 세 작품을 일컬어 ‘위성 3부작 시리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위성아트들은 언어가 달라도 예술로 인류가 하나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세계와 손잡고〉 에는 소련의 음악가 세르게이 큐료힌과 그의 밴드가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는데, 냉전 체제가 무너지기도 전에 이념을 초월한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백남준의 작품들은 국가주의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비추어볼 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더불어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놓은 당시 20세기 시대상과 함께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동시에 일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에서

◆ 예술 작품에는 예외 없이 작가의 철학적 사고와 인생관 그리고 체험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작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작품에 담긴 참된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 작가가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렸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 일본, 독일, 미국에 걸친 백남준의 흔적을 쫓아다니며 각 나라에서 그가 겪은 경험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파악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현장에 직접 가서 백남준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그의 삶 속에 한 발짝씩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작업이었다. 백남준의 사고는 몽골의 칭기즈칸처럼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독일을 거쳐 미국까지 종횡무진 날아다녔다. 몸은 한곳에 매여 있을지언정 그의 사고는 국경 너머 전 세계로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이런 현상을 두고 백남준은 ‘정주 유목민stationary nomad’이라고 불렀다. 스스로를 유목민의 후예라고 자처한 그는 길 위에서의 삶을 사랑했다. 여러 나라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했고, 이는 세상에 대한 통찰로 이어졌다.
- 〈프롤로그〉 중

◆ 비디오아트의 의미는 예술가의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바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가 백남준이라는 점이다. 한 비평가가 “회화를 누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는 분명하다. 바로 백남준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비디오아트 하면 자연스럽게 백남준을 떠올린다. 백남준이 창조한 비디오아트는 여러 면에서 가히 혁명적이었다. 작품의 소재가 종이나 캔버스가 아닌 브라운관이나 전기회로라는 점에서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회화에 대한 개념을 전복한다.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 〈1장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 중

◆ 백남준아트센터의 〈TV 정원〉은 정원을 둘러볼 수 있는 작은 회랑으로 에워싸여 있고, 위에서 숲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전시해놓았다. 즉 작품의 근경과 원경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이다. 백남준은 실내에 식물들을 배치해 정원을 만든 뒤, 그 사이사이에 텔레비전을 배치했다. 자연과 텔레비전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구성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기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 〈1장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 중

◆ 미술의 경우 회화나 조각과 같은 작품을 감상할 때 시간의 흐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몇 분 몇 초든 관람객이 원하는 시간만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은 미술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정한 리듬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무척 중요하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비디오아트는 미술보다 음악에 가깝다. 그래서 음악교육을 받은 백남준이야말로 비디오아트에 적합한 예술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 〈1장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 중

◆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TV 부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표작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으리라. 실제로 비평가들도 이 작품을 주저 없이 백남준 예술의 백미로 꼽는다. 동양과 서양, 선과 테크놀로지, 관조와 나르시시즘 등 대척점에 선 듯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지극히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걸작이 바로 이 〈TV 부처〉인 것이다. (…) 〈TV 부처〉는 보는 이들에게 성찰의 여지를 제공하면서도 심오한 진리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작품이지만 그 얼개는 지극히 단순하다. 웬만한 골동품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그마한 불상과 비디오카메라 그리고 텔레비전이 전부다. 백남준은 텔레비전 앞에 불상을 놓아 마주 보게 했다. 그러고 나서 그 텔레비전 뒤에 비디오카메라를 세워두고 불상이 찍히도록 설정했다. 즉 부처가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자신의 모습을 모니터로 응시하도록 연출한 것이다. 무척이나 간단한 설치 작품임에도 보고 있으면 ‘부처가 화면에 잡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혹은 ‘테크놀로지는 차가운 기계 문명을 넘어 형이상학적 세계까지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숱한 상념에 빠져들게 한다.
- 〈2장 일본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중

◆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는 백남준이 케이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다. 그는 케이지에게서 기존의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소음, 심지어 침묵까지도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이 작품은 그런 사상에 기초해 온갖 잡다한 소음 그리고 피아노를 뒤엎는 소리까지 음악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인 셈이었다.
- 〈3장 세상에 없던 새로운 예술을 꿈꾸다〉 중

◆ 백남준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은 독재 혹은 창작자 혼자만의 예술이라고 간주했기에 어렵고 엄숙하며 딱딱한 예술이 아닌 관람객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관람객들 저마다가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즐김으로써 예술이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백남준이 추구하는 예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3장 세상에 없던 새로운 예술을 꿈꾸다〉 중

◆ 인간의 본능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수치스러운 것으로 통하는 나체, 배설, 성관계 모두가 부끄러움을 느낄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옷을 벗으면 남녀의 몸이 그렇게 생겼음을 누구나 안다. 배설을 하지 않는 인간은 없으며 우리 모두 남녀 간의 성관계로 태어난 존재다. 왜 우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본질적 형태와 행위를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참으로 모순된 생각이기에 많은 위대한 사상가가 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초개처럼 내던져버렸다. 무어먼과 백남준 역시 이처럼 가식적인 생각을 진즉에 버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 〈4장 끝나지 않은 백남준의 예술〉 중

◆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뜻 보기에 예술과 과학은 하나가 될 수 없는 분야처럼 보인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술은 감성에, 과학은 이성에 토대를 두고 태어나 발전해왔다. 그래서 예술이 주관적이고 선험적 측면이 강한 반면, 과학은 객관적이고 경험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니 이질적인 예술과 과학에 모두 능통하면서 이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다빈치와 백남준 모두 예술과 과학에 능통했으며 이를 통섭해나갔다.
- 〈에필로그〉 중

목차

[클래식 클라우드 018 - 백남준]

◎ 목차
PROLOGUE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

01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하다
종로의 아이
유년의 기억에서 영감을 얻다
똑똑하고 병약했던 부잣집 도련님
마르크스와 쇤베르크에 빠져들다

02 일본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고국을 그리워하다
〈TV 부처〉, 동서양이 하나 되다
도쿄대에서 마주친 인물들
황색 재앙, 그것이 바로 나다
평생의 후원자, 와타리 시즈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 아베 슈야

03 세상에 없던 새로운 예술을 꿈꾸다
유쾌한 괴짜들의 향연
나의 시대는 케이지를 만나기 전과 그 후로 나뉜다
예술계에 새롭게 떠오른 앙팡테리블
영원한 친구 보이스를 만나다
비디오아트의 탄생

04 끝나지 않은 백남준의 예술
뉴욕에 입성하다
성적 해방을 부르짖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예술적 동지에서 인생의 반려자로
신시내티의 스튜디오에서 불거진 위작 논란
정보화 시대의 묵시록, 〈전자 초고속도로〉
위성을 이용한 우주 오페라
야곱의 사다리에 오른 백남준

EPILOGUE 20세기의 다빈치

백남준 예술의 키워드
백남준 생애의 결정적 장면
주석 및 참고 문헌

저자소개

※ 저자소개


이름: 남정호
약력: 중앙일보 기자, 논설위원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 정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앙일보》 사회부와 정치부를 거쳐 브뤼셀, 런던, 뉴욕 특파원을 지냈고 현재 논설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06년 뉴욕 특파원으로 백남준의 장례식을 취재하면서 그의 일본인 아내이자 전위예술가인 구보타 시게코와 인연을 맺은 뒤 수년에 걸쳐 뉴욕을 오가며 인터뷰했고, 이를 바탕으로 『나의 사랑 백남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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