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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학 > 국내소설

아름다운 새벽 (상)

다시보는 한국 근대문학 17

도서 이미지 - 아름다운 새벽 (상)

채만식

하이안북스|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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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가격정보
전자책 정가 1,000원
구매 1,000원3% 적립
출간정보 2019.07.18|EPUB|6.89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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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시보는 한국 근대문학 17 책 입니다.

채만식님의 대표작 중 [아름다운 새벽 (상)]의 내용 중 일부를 아래에 올려봅니다.


* ---------------------------- *


1. 별명은 생철동이라도


본시 조용하진 못한 마나님인데 겸하여 역정이 난 참이고 보니 그 야단스런 품이 미상불 생철동이를 뚜드리는 만큼이나 자못 시끄럽다.



“아니 그래…… 어떡허면 그래……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동네가 벌컥 뒤집하게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다. ‘절구통마나님’이라고도 또한 별명하는 그 육중스런 몸집을 연해 휘둘러싸면서 푸짐한 넋두리가(아들 준을 두고 하는 넋두리가) 한바탕 벌어지던 것이다.



“으응?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그래…… 어떡허면 그래…… 고따위루응? 고따위루……”



마침 메주를 쑤었다. 큰 가마솥에다 큰 대시루를 걸고 푸욱신 삶은 메주콩을 바가지로 퍼억퍽 큰 대소쿠리에다 퍼담는다. 허연 김이 뭉게뭉게 피어나오고 집 안팎으로 구수한 메주콩내가 흥건히 풍긴다.



마나님 강부인은 일변 메주콩을 퍼 담으면서 일변 넋두리로 입은 쉴 새 없이 바쁘면서, 이윽고 소쿠리가 수북하게 차자 불끈 집어 들고는 쭈르르 마당으로 달려나온다. 거뜬거뜬한 게 뚱뚱한 체집 보아서는 딴 사람 같다. 몸도 연가벽거니와 소쿠리 밑에서 메주물이 찌르르 함부로 쏟아지건만 그 한 방울도 치마 앞자락이나 버선등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새색시 적부터도 일솜씨 깔끔스럽기로도 고을 일판에서 소문 있던 부인이다. 나이 오십이로되 젊었을 적 솜씨가 여전하고 가시지 않는다.



마당에는 절구와 절굿대, 안반 등속 메주 찔 채비를 마침 다 차려놓았다.



“대체 어떡허다 이 내 속에서 그런 자식이 나왔드란 말인고? 으응?…… 천하 농통허구, 근경속 없구, 잔망스럽구……”



당자 준은 고사하고 옆에서 누구 한 사람(하다못해 귀덕어멈이라도) 듣고 있는 이조차 없건만, 그러니 매양 강 건너 눈흘기기요 혼자의 푸념이건만, 그런 건 다 상관 아니었다.



들고 온 메주콩을 메 소쿠리째 절구에다 엎는다.



“제발 좀 외탁을 하겠지? 외탁을 했으면야 사람녀석이 고대두룩야 농통스렀으리 ?…… 세상 주변성 없구, 고정하기만한 즈이 으런 승미 고대루 닮어가지구는…… 그 으런은 그래두 고집이나 없었지! 고집이나……”



좌우를 휘휘 둘러본다. 당연히 등대하고 있었을 귀덕어멈이 간 곳 없고 보이지 않는다.



“아 귀덕어머엄 ?”



불러도 대답하고 나오는 싹도 없다.



“방정이 그새 어디루 또 싸아나갔담 ?”



조금 역정이 더했고, 그 길에 절굿대를 치켜들려다가 또 생각이 나서 일단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시추뚜껑을 덮어놓는다.



“야숙한 놈! 천하에 모질구두 매정스런 놈!…… 그 놈이 비상보담두더 독한 놈이어든!…… 제가 그러구서두 복을 받을까?”



부엌을 다녀와서는 서슴지 않고 곧 절굿대를 집어들고 메주방아를 찧기 시작한다. 부자는 아니라도 오륙백 석 추수를 하여 쓰고 밀리는 성세요, 편안히 지내도 좋을 팔자이었지만,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 메주방아쯤 찧기를 주저치 않는다.



젊은 장정 못지 않게 절굿대가 기운차게 오르내린다.



“싯 싯.”



그리고 무딘 절구 소리가 그에 화할 뿐, 젉두리가 잠깐 끊긴다.



서향한 옆채의 처마 끝에 수정 발을 드리운 듯 주렁주렁이 매달린 고드름이 맑은 햇빛에 영롱히 번뜩인다.



높다란 ‘유지저리’ 꼭대기에서 긴 상모가 멋들어지게 나부낀다. 상모 끝으로 팔랑개비가 모형 비행기의 프로펠러처럼 이쁘게 돈다.



“후욱!”



소스라치게 외양간에서 암소가 한숨을 내쉰다.



“망헐 것!



강부인이 돌려다보고는 핀잔을 한다.



“너두 자식 못 쓸 것 두었드냐 ?…… 에미 쏙 썩히는 자식 두었어 ? 죄없는 안해 소박하는 자식 두구?”



마악 그럴 때에 건넌방으로부터 병색과 수심을 얼굴에 드리우고, 며느리가(방금 강부인이 하던 말로 하면 ‘죄 없이 소박 받는’ 준의 아낙이) 헝클어진 머리를 다지르면서 원기 없이 마당으로 내려오고 있다.



“왜 나오느냐? 누었들랑 않구서!”



강부인은 걱정을 한다는 양이, 하마 잡도리를 하려 든다.



고부간(姑婦間)이라고 하지만 시어머니 강부인이 쉰둘에 며느리 서씨가 열네 살 떨어지는 서른여덟이면 낼 모레가 마흔…… 여자 나이 마흔이면 벌써 늙음줄에 들어간 나이다. 서씨는 그런데다 심화와 부실한 건강으로, 볼성없이 바스러지고 조로를 하였다. 언뜻 사십이 훨씬 넘어보인다.



그와 반대로 시어머니 강부인은 이른바 노익장(老益壯)하여, 원 나이보다 네댓 살은 젊어보인다.



이 고부는 그래서 같이 늙어가는 터이고, 속 모르는 방물장사 붙이들이 일쑤 동서(同婿)끼리거니 하여 종종 망발을 하는 수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제 팔자라는 것을, 즉 제 일생의 운명을 각지 제 얼굴에다 그려가지고 태어난다는 소위 상학(相學)의 주장이 일반으로는 족히 종작할 것이 못된다 치더라도 막상 이 서씨라는 여인에게만은 엔간히 들어맞았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가 없다.



노상 혼인하던 첫날밤 애기신랑에게 소박을 맞은 이래 이십 년은, 꼬박 생과부로 살아오는 여인이니라 하는 선입주견만으로가 아니다. 아무 내력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어딘지 불행하여 보인다. 추레하고 수심스러운 표정이야 그 자신의 항상 경황없고 슬픈 심정의 반영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말고도, 일종 선천적인 것으로 무엇인지 모를 불길스런 듯 박행스런 듯한 상모(相貌)다. 표정이 아니라 얼굴 원 바탕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인물이 잘생겼다 혹은 못생겼다 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속담에 일색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다고 하거니와 지금은 다 바스러졌을망정 일찌기 인물 축에 들면 들었었지 결코 박색은 아니었다.



남의 앞에 빠지지 않을 만큼 여자다운 매력도 지녔고 겸하여 그 갸름한 얼굴 바탕에 준한 듯한 코와 길게 째진 눈초리 등 자못 범키 어려운 위엄을 갖추어, 어디로 보나 인물을 가지고 하더라도 탈잡힐 구석이 별로이 없다. 항차 그의 아름다운 심성과 현숙한 부덕(婦德)이리요. 그러기에 노오 강부인이



‘제 따위 놈이 생전 어딜 그런 가숙을 천신을 해? 과분한 줄 모르고서!……’



이렇게 안타까와하는 것도 한갓 입에 붙은 말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시가 준이 아낙을 소박한 소연이 그 인물에 있는 것도 아니요, 심성이나 부덕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도 아니다. 또 열세 살에 든 장가라서 장성한 후 개성이 눈뜸을 좇아 자유결혼을 욕망하는 나머지 아낙에게 애정이 없다는 것을 구실로 명령결혼(命令結婚)에 대하여 의식적인 항거를 일삼고 있는 것이냐 하면 그역 아니다. 아울러 달리 침혹한 이를테면 연애를 하는 여자가 생겼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그와 더불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할 사정…… 이런 사정의 유무는 우선 차치하고, 근본이 그런 데서 우러난 문제인 것도 또한 아니다. 오직 한가지 특별한 사유가 따로이 있던 것이다. 하되 그것은 맹랑하기 상식을 초월한것으로, 항용 이성이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좀처럼 휘어잡기 어려운 마성(魔性)을 띠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십 전 생과부로(정히 처녀과부로) 사십고개를 넘고 있는 그 서씨였다.



강부인은 또 강부인으로, 일찌기 삼십에 남편을 여의고 혼자 된 이였다.



하나는 삼십과부, 하나는 처녀 적부터의 생과부…… 다같이 모과 영혼이 한량없이 고달픈 두 여인이었다. 자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위하고 의지하여 피차간 의좋고 정다울 수가 있는 고부끼리였다.



원래가 둘이 다 선비네 가문의 태생으로, 사람들이 점잖스러웠다. 또 직성이 잘 맞았다. 같은 성격이 아니라, 다르면서도 조화가 될 수 있는 성격이어서 직성이 맞는 것이다. 거기다 겸하여 팔자가 또한 그렇듯 비슷한 팔자요 하니, 본디야 남남끼리 모여진 고부간이라지만 부모 자식이란 윤기가 떳떳하겠다, 서로간 사이가 나쁘고 싶어도 나쁘지 못할 처지였다.



미상불 남이 부러울 만큼 고부는 정이 자별했다. 그런 중에도 강부인이 며느리 서씨를 연민(憐悶)하며 자애하는 애정은 예사 자기 친소생의 자녀에게도 미치기 어려운 깊고 곡진함이 있었다. 천품이 천품이라, 그 형식이 심히 퉁명스럽고 본치 없기는 하여도……



“왜 나와?”



강부인은 재차 이렇게 나무란다. 음성은 지금껏 혼자 넋두리를 하던대로 여전히 높은 음성이면서도, 그러나 판이하게 부드럽고 정이 듣는다. 얼굴도 그러하다.



서씨는 이 근년으로 더욱 성한 날보다 앓는 날이 많았고, 이번에도 그새 연 사흘째 몸져누워 앓던 참이다.



시어머니가 성화를 하는 것을, 서씨는 그저 모호하게



“네에……” 하면서 심상히 그대로 걸어오더니, 붙임성 있이 절구 옆으로 다가선다.



“어머니는 들어가세요! 지가 찌께요!”



“! ……”



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강부인은 절굿대를 올린 채 말없이 뻐언히 며느리를 건너다보다가 버럭



“냉큼 들어가 누었지 못하느냐?” 하면서 꽝 절굿대를 내려찧는다.



“걸 어떻게 찌신다구 그러세여?”



“메주방아는 찧는 사람이 따루 있다더냐?”



경우에 따라 아무나 예사로이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는 말이다. 동시에 듣는 사람도 심상히 듣자면 심상이 듣고 말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강부인에 있어서는



‘메주방아는 찧는 사람이 따로 있다더냐?’는 이 한마디로써 강부인이라는 여인의 사람 됨이랄지 생활이며 및 그 오십 평생을 잘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갓서른에, 그때 겨우 열한살난 아들 준을 데리고 혼자몸이 되었다. 손위로 어른도 다 없고 집안이 또한 몹시 고단한 집안이었다. 그 백씨를 닮아 지지리 주변성 없는 시숙 준의 삼촌 숙부 하나가 한 동네에서 살고 있을 뿐, 젊은 홀어머니 살림을 보살펴라도 줌직한 일가라곤 시가편으로든 친가편으로든 별로이 없었다.



잘하나 못하나 강부인은 그리하여, 내 스스로의 주견과 힘으로써 모든 것을 감당해 나가야만 했다. 집안과 살림살이의 짜장 주인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목차

<아름다운 새벽 (상)>

1. 별명은 생철동이라도
2. 까치가 우짖더니
3. 버젓한 안해가 있는 몸이
4. 사실인 것과 진실인 것과
5. 우리 집 창의 불빛
6. 부질없은 우연

이 책의 연관시리즈|아름다운 새벽

저자소개

채만식(蔡萬植)

(1902년 7월 21일 ~ 1950년 6월 11일)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극작가, 문학평론가, 수필가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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