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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김태균

페이퍼로드|2019.06.12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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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가격정보
전자책 정가 9,100원
구매 9,100원3% 적립
출간정보 2019.06.12|EPUB|20.77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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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회심의 역작,
20대 암 환자의 따뜻하고도 유머러스한 치유 에세이!제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은데요

누구나 인생에서 각자가 짊어진 무게만큼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있다. 허약하게 타고난 장기,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지병 등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은 만성적이고 때로는 끈덕지다. 그런데 잠깐, 이 청년은 어딘지 스케일이 남달라 보인다. 카투사 헌병으로 복무하던 22살 겨울, 평소보다 유난히 코피를 자주 흘리던 그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간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혈액암. 그때부터 청년은 미적지근한 삶과는 영원히 작별을 고하게 된다.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는 22살에 혈액암을 선고받은 저자의 투병 생활을 유머러스하고도 따뜻하게 풀어낸 신작 에세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잘생김을 포기한다는 의미심장한 선언을 하는 것일까.


수많은 항암치료를 거듭하면서 얼굴이 많이 망가졌다. 코 부근에 혈액암이 발병했기에 항암제를 투여하면서 코 연골을 비롯한 주변의 지방세포까지 모조리 죽어버렸다. 뭐 애초에 얼굴로 먹고살 만큼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조인성이나 강동원의 얼굴에서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면 외모의 갭이 롯데타워 정도의 나락이기에 충격으로 즉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뭐랄까 후하게 쳐주어도 아파트 3층 높이 정도의 격차이기에 떨어지더라도 발목이 삐끗한 정도의 아픔이려나. ‘아… 아프다’라고 생각하며 몸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버리고 제 갈 길 가면 그만인 것이다.
- 본문 99p 중에서

한창 외모에 신경 쓸 시기인 20대에 항암치료로 대머리가 된 것도 모자라, 혈액암이 코 주위에 발병했다. 그 때문에 ‘잘생김을 포기’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만 저자는 마냥 절망하지 않는다. 외모의 갭이 조인성이나 강동원이 입었을 피해보다는 경미하기 때문에 그저 ‘툴툴 털고 제 갈 길 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는 이처럼 극한의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피어난 생의 의지를 가득 담은 회심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유머와 슬픔을 절묘한 비율로 섞어 만든
독특한 칵테일 같은 문장들

너무 고통스러워서 약에 취해 눈이 감길 때면 ‘아…, 이 정도로 아프니까 오늘밤에는 결국 죽겠구나. 아무렴, 몸이 이런 고통을 견딜 리가 없지. 안녕 세상아. 안녕 어머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아차.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이 간호사에게 건넨 〈아니요, 이틀째 똥을 못 눴어요〉 따위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무래도 부끄러운데. 아 이제 그런 부끄러움 따위는 상관없으려나’ 같은 생각을 번갈아 하며 잠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곤 했다.
-본문 43p 중에서

항암치료 과정에서 느낀 고통은 문장 곳곳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자는 장난기어린 특유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때로는 자조적으로, 때로는 해학적으로 고통을 승화한다. 항암치료로 반들반들한 민머리가 된 자신의 모습을 『해리포터』의 악역 볼드모트와 동일시하는가 하면, 흉부에 찬 공기를 빼기 위해 호스를 삽입하는 순간에는 그간 빨대로 뚫어왔던 ‘야쿠르트’들에게 뜬금없는 사과를 하기도 한다. 물론 절망은 시시때때로 다시 그를 덮친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충동적으로 한적한 도시에 머물며 한 시기를 보내는 동안, 석양이 지는 호숫가 연인들 틈에서 그는 스스로를 ‘회색빛 사람’이라고 묘사하며 세상과는 동떨어진 자신의 처량한 처지를 비관한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버티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항암치료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그렇게 1부가 끝이 난다.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2부에서는 항암치료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 저자가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하고 피시방에서 요란한 알바 생활을 하기도 하면서 단절되었던 사회 감각들을 회복하는 한편, 암 환자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단상들을 잔잔하게 읊어낸다. 화가 난 여자친구를 보낸 뒤 ‘암 환자가 무슨 사랑이야……’라는 넋두리를 풀어놓기도 한다. 1부가 침대를 배경으로 한 서바이벌 체험기였다면 2부는 보다 경쾌한 톤의 일상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단순한 암 투병기가 아닌, 인생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녹아 있는 눅진한 삶의 에세이라는 점에 있다. 이제 갓 서른 초반이 된 저자의 목소리가 나이를 초월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가 한창 나이에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장 곳곳에 숨어 있는 인생사에 대한 통찰들도 주목해서 읽어볼 만하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느낀다. 이 책 역시 그렇게 읽혀도 무방하다고 저자는 책날개에서 자신의 약력을 밝히며 호쾌하게 얘기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가 매겨지기에는 어딘지 아쉽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암이 아니라도 삶은 쉽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선천적으로 약하게 타고난 후각과 코 주위에 생긴 암 때문에 비가 오는 날 ‘비 냄새’를 느끼는 사람들을 신기해한다. 꽃병에 꽂힌 장미 한 다발을 보면서 수액과 영양제에 의지해야 했던 자신과 꽃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홍삼으로 만든 건강보조식품을 빨아들이며 생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자신을 건져올린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고통을 다루는 법에 대한 에세이다.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청년부터, 암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저자의 문장에 공명하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두 달 정도 후에는 완전히 대머리가 되었다.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대머리라니. 사실 암에 걸렸다는 것보다 대머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유서 깊고 대단하신 안동 김씨 가문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강력한 모발이 싹 다 날아가 버렸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했는데 조선 시대였다면 천하의 후레자식이 되어버렸겠지. 좀 억울하다. 대머리인 것도 모자라서 불효라니…….
정말 시원하게 온전한 민머리다. 밀어서 모근이 살아있는 까끌까끌한 대머리가 아니라, 모근 하나 남아있지 않은 온전한 민머리가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덥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정수리부터 땀이 흐른다는 것이다. 밥을 먹는 데 열중하다 보면 얼굴로 주르륵 떨어지며 흐르는 땀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태까지 머리에는 땀이 안 나오게 태어났다고 믿었는데.
민머리가 된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삶은 계란이 생각난다. 항암제로 절인 계란은 아무래도 꺼림칙하지만. 그래도 정말 아무런 꾸밈없는 온전한 나를 바라보는 건 신선했다.
세상 모든 일에 백프로 나쁜 일은 없다. 눈을 가늘게 뜨고 찬찬히 살펴보면 좋은 점도 보이기 마련이다. 나 또한 새로운 장점을 찾았다. 반들반들한 민머리라서 ‘아차!!’ 같은 리액션을 할 때, 손바닥으로 머리를 “탁!” 하고 치면 “착!” 하며 감기는 느낌이 발군이다. 모근이 살아있는 까끌한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 평생을 간직해온 나의 가장 부드러운 살결을 만지는 건 꽤 좋은 느낌이다.
-본문 19~20쪽 중에서


지구가 항상 항암제로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울렁거리고 역겨워서 시도 때도 없이 토를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눈알을 누른 상태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것 같이 시공간이 휘어졌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토였다. 아침에 흉부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 2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조차 항상 서너 번씩 토를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새벽 5시 반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토를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마치 성실한 좀비처럼.
어느 날 검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도대체 매일 복도에다가 토하는 사람이 누구야아악!” 하며 절규하시는 메아리가 들렸다. 그 순간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도 때도 없이 토를 하니까 나중에는 위에서 초록색 액체를 꾸역꾸역 게워냈다. 마치 뱃속에서 “들어가는 게 있어야 뭘 내보내지.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라고 말해오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몸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처럼 상식을 벗어났고 기묘했다. 어느 날은 뼛속의 골수까지 시려서 이불을 두 겹이나 덮고서도 벌벌 떨다가, 다음 날이면 혼자 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얼굴이 벌게져서는 식은땀을 흘렸다. 입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기관이 모두 망가져서 며칠을 아무것도 안 먹으며 누워 있다가도 갑자기 미친 듯이 배고파서 영양제 두 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물론 곧바로 침대에 토해내서 한바탕 소동이 났지만.
-본문 23~24쪽 중에서

수술대에 누워있으니 인턴이 와서 녹색 천으로 눈을 가렸다. 수술이 시작되고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상태였는데 천을 완벽하게 가리지 않아서 내 몸을 실시간으로 찍고 있는 엑스레이가 보였다. 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는 튜브를 몸 안이 보이는 모니터로 지켜보는 건 꽤 그로테스크하다. 의사들도 결국 사람이다. 컴퓨터처럼 완벽하게 모든 수술을 진행할 리 없지.
나는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다섯 발자국 정도 뒤에서 의사가 내 몸을 푹푹 쑤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모습을 직접 대면하니까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아서 놀라웠다. 매번 가리고 있으니까, 외면하고 있으니까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아픔은 눈을 똑바로 뜨고 정면으로 냉철하게 마주 보면 생각보다 이겨내기 쉬워진다. 아! 수술대 위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하늘 위에서 선녀가 내려와 “이제 옥황상제의 눈을 피해 뒹굴거리던 업을 다 해결하셨으니 저와 함께 올라가시죠”라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삽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스테이플러를 박으며 피부를 봉합하는 중에 부분 마취가 풀려간다.
“앗 땃 따것!!”
결국 신경질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아…, 선녀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본문 26~27쪽 중에서

하루는 병원에서 여자친구의 부축을 받으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도 무슨 검사를 받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남들의 시선에 과민 반응하며 날카로워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는데 젊은 부부와 5살 정도의 귀여운 남자아이 그리고 눈 한쪽이 부어있는 환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남자아이가 고개를 들고서 나를 바라보더니 똘망똘망하고 큰 목소리로, 옆에서 아이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저 아저씨는 왜 머리가 없어?”
너무 당당해서 마치 ‘안녕하세오! 저는 몬테소리 유치원 햇님반 김○○입니다!’라며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순간 주변의 모두가 당황스러워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어머머머, 얘 왜 이러니, 왜 이러니!”라며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회색 롱 코트를 입고 있던 젊은 남편은 고개를 숙이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구석의 환자는 끔뻑거릴 수 있는 부어있지 않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푸하하.”
그리고 나는 유쾌함에 소리 내어 웃었다. 발가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이는 보이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고 말 속에는 어떠한 의미도 조롱도 없다. 단순한 호기심으로만 가득 차 있었을 뿐. 괜찮다고 말한 후에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아이는 계속 바라봤고 나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쩐지 그 후부터는 사람들이 흘끗거려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하늘에서 나에게 보내준 천사가 아니었을까.
-본문 29쪽 중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과 ‘죽어간다는 것’이 이렇게나 애매하게 섞여있을 수도 있음을 느꼈다. 심장은 꾸준히 살아가는 중이지만, 암 환자가 된 순간 나는 동시에 ‘죽어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암 환자로 살아가는 인생은 마치 ‘아포가토’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아이스크림처럼 마냥 달달한 상황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에스프레소처럼 씁쓸하기만 한 인생을 살아가느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게 한없이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달달함과 씁쓸함의 경계에 있는 애매모호한 인생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내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조금은 빠르고 진지하게 성찰해볼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함께해서 더러웠고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럭저럭 감사했다 말하고 싶다.
어두운 밤하늘 같은 운명에 행복이 별처럼 작지만, 촘촘히 박혀 있었던 투병생활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암에 걸렸다고 세상 끝났다는 듯이 눈물만 흘리기엔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보다 훨씬 힘들고 어렵게 투병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았다. 암은 불치병과는 다르게 그나마 치료 가능성이 있는 병이기도 했고.
-본문 51~52쪽 중에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할 때면 가끔 장미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사실 꽃을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집에 장식하는 걸 좋아하진 않았다. 꽃을 집에 둔다는 것이 그녀의 뿌리를 서슴없이 동강동강 자르고 가시를 뽑은 뒤, 이파리도 툭툭 뜯어내고선 물에 담가 생명을 유지시키며 그 아름다움에 흡족해하는 행위라 생각할 때면 썩 유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기계적으로 도축된 고기, 온갖 과일과 채소 또한 즐겨 먹기는 해도, 물병에 담겨 생명을 유지하는 장미꽃을 볼 때마다 수액과 항암제로 생명을 유지하던 내가 떠올라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맞는지, 물을 갈아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꾸 불안해서 이파리를 쓰다듬었다가 혹시나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봐 얼른 손을 떼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이렇게나 신경 쓰이는 일이라니.
-본문 95p 중에서

수많은 항암치료를 거듭하면서 얼굴이 많이 망가졌다. 코 부근에 혈액암이 발병했기에 항암제를 투여하면서 코 연골을 비롯한 주변의 지방세포까지 모조리 죽어버렸다. 뭐 애초에 얼굴로 먹고살 만큼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조인성이나 강동원의 얼굴에서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면 외모의 갭이 롯데타워 정도의 나락이기에 충격으로 즉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뭐랄까 후하게 쳐주어도 아파트 3층 높이 정도의 격차이기에 떨어지더라도 발목이 삐끗한 정도의 아픔이려나. ‘아… 아프다’라고 생각하며 몸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버리고 제 갈 길 가면 그만인 것이다.
-본문 99쪽 중에서

코뼈가 암으로 썩어서 그 썩은 냄새가 코를 통해 나오고 있었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그 후 조직검사를 통해 암 진단을 받았고 이미 썩어버린 코뼈 대부분을 제거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군대의 선·후임들은 그저 ‘샤워는 열심히 하지만 이를 잘 닦지 않나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좀 우습기도 하다. 샤워는 하루 두 번씩 꼬박꼬박 하지만 이를 안 닦아서 썩은 내가 나는 사람. 나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강한 항암제를 사용하는 동안 축농증도 많이 호전되었고, 후각이 꽤나 돌아온 적도 있었다. 돌아왔다기보다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진 적이 있다. 어느 날 병실로 들어온 어머니에게서 인공 바나나 향이 났다.
“엄마 어디서 바나나 향기가 나는데? 약간 화학조미료 같은…….”
알고 보니 1층 로비에서 바나나우유를 드시고 올라오셨단다. 어쩐지 우쭐해졌다. 물론 그 직후, 온종일 굶는 나를 조금이라도 먹여보겠다며 가져온 볶음김치 냄새에 몇 시간을 토해대는 바람에 볶음김치에 대한 거부감이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렸기는 하지만.
요즘도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가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덕분에 궁금했던 비 냄새도 맡아보고, 풀향기라는 것도 느껴보았다. 향수를 뿌리고 온 친구한테 “야! 오늘 너한테서 좋은 향기 난다!” 며 칭찬도 해줄 수 있고. 그런 날은 온종일 뿌듯하다.
나는 ‘향’에 대한 로망이 있다. 어쩌면 내가 평생을 자유롭게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런 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많은 부분을 향으로 인지하고 기억하며 살아간다. 좋아하는 향기가 나는 글들이 있다. 쓸쓸한 향기를 가진 추억들도 있다. 비겁한 악취를 풍기는 사람도 있고, 서글픈 향기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게 무슨 냄새예요?”라고 물어본다면 나 역시 그때의 친구처럼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라며 대장금이 되어버리겠지만.
-본문 176쪽 중에서

목차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프롤로그— 5

1부 。
제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은데요

암 환자는 서로를 닮아간다— 13
감정이입의 패러독스— 16
거울 앞에 선 동양인 볼드모트— 19
징징이를 받아주는 세상은 없다— 23
잠에서 깨면 언제나 보라색 초승달— 26
세상은 어쩐지 블랙코미디— 31
꺼져가는 조명처럼 나를 기억해줘요— 35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 안에 있다— 38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46
아포가토의 마음가짐— 51
안전하게 넘어지는 법— 55
무관심이 때로는 위로가 된다— 57
실험실 생쥐의 분노— 62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은 항상 영어를 쓴다— 66
생각을 그만둔 사람의 하루— 69
추억은 꽃잎이 되어 흩날리고— 73
안녕? 안녕!— 76
무균실의 나날들— 81
샴푸에 치약을 섞어 먹는 느낌— 87
왜 이겨내야 하는 걸까— 90
꽃을 버리는 방법— 94
마스크를 벗는 시간 — 98
이상한 나라의 암 환자— 102
소소한 일기 ─ # 병원편 — 106

2부 。
프로아픔러가
사는 법

진주 향이 나는 첫사랑— 115
현모양처라는 꿈— 121
그녀의 연애를 응원하고 있다— 129
친구야, 사는 게 뭘까— 139
말을 조심해서 생기는 사고는 없다— 147
어떤 이가 슬플 때, 누군가는 웃는다— 153
산 자들의 위로가 오가는 자리에서— 160
모두가 모두를 잊어간다— 165
상처를 뜨거운 물로 지지면— 170
비 냄새는 어떤 냄새일까— 173
양배추 샐러드 관계— 178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185
멍 때리다 내디딘 삶의 한 발짝— 190
누군가의 뭔가가 된다는 것— 200
별들처럼 수많은 가능성— 206
부지런히 살 마음이 딱히 안 드는데요?— 212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로 슬픈 일이다— 220
역시 말랑말랑한 것이 좋아— 227
소소한 일기 ─ # 일상편— 234
에필로그 — 241

저자소개

지은이 김태균

22살에 암에 걸린 9년 차 ‘프로아픔러’입니다. 어느 날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유언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회복한 후로도 주로 아플 때나 외로울 때 글을 씁니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맥락 따위 없이 즐겁게 씁니다. 그래서 진심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삶은 마냥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하염없이 슬픈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어서 그런 ‘삶’을 담은 제 글도 그 언저리에 있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글이 약간의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런 인간 언저리 놈도 살아가는데…’라고 생각하셔도 좋고요. 물론 약간 상처받겠지만, 그건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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