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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학 > 국내소설

선구녀

김동인

SENAYA 출판|201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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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가격정보
전자책 정가 500원
구매 500원+3% 적립
출간정보 2013.09.05|EPUB|0.13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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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김연실전의 후일담이다.

수없는 인명과 수없는 재물과 수없는 인류의 보화를 삼키고 세계 대전쟁이 종식이 되었다.

일본도 이 전쟁에 참가는 하였다 하나 겨우 동양의 한구석 교주만 근처에서 퉁탕거려보고 의리적으로 불란서 전선에 군대를 약간 보내본 뿐이라 재정적으로 손해가 극히 적었다.

그 대신 이 전쟁 때문에 얻은 이익은 지극히 컸다. 지금껏 온갖 약품이며 기계를 독일에서 수입하던 것이 독일과 국교 단절을 한 관계상 자작자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과학계의 발달이 놀라웠다.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덤비느라고 일용품조차 제 나라에서 만들지 못하는 관계상 미국이며 일본 등에 주문하여다가 쓰게 되니만치 무역상의 이익이 놀랍게 되었다. 해운으로 굴러 들어온 돈도 막대하였다. 위체 관계로 얻은 이익도 막대하였다.

그러나 이런 적지 않은 이익의 반면에는 손해도 또한 없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주의의 흥성과 사치 ─ 이것이 가장 눈에 뜨이는 악영향이었다.

서양 문명의 겉물핥기 ─ 이삼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리우치를 쓰는 학생이 없었고 금단추 이외에는 쓰메에리가 쉽지 않았고 학생은 세비로를 안 입던 동경이 갑자기 변하여 십팔구 세만 되면 세비로 한 벌은 장만하고 여학생들은 새빨간 하오리를 휘날리고 여자 양복도 드문드문 보이게 되었다.

서양 문명의 겉물을 핥은 또 그 겉물을 연실이는 핥았다.

아무 속살도 모르고 단지 겉만 흉내내면서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이렇게 나날이 향상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속 알맹이는 그 몇 해 전 ‘베개를 내려오라’면 내려오던 그 시절에서 한 걸음도 진전된 바 없었다.

조선 신문화는 대개 동경 유학생의 힘으로 건설되었고 문화의 제일 과정은 자유 연애였다.

연실이가 장차 조선에 돌아가면 건설하려던 조선 신문학은 연실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아직 동경 유학할 동안에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이고주(李古周)라는 청년 문학도가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 이 청년 문학도가 문학이라는 무기를 이용하여 처음 부르짖은 것이 자유연애였다.

이 현상은 연실이로 하여금 더욱더 연애와 문학은 불가분의 것이라는 신념을 굳게 하였다.

저자소개

김동인 ( 金東仁 1900 ~1951)

본관 전주. 호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 창씨명(創氏名)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도쿄[東京]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발간하는 한편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 ·구금되어 4개월 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狂炎)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이광수(李光洙)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하던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1년 서울 행촌동(杏村洞)으로 이사하여 《결혼식》(1931) 《발가락이 닮았다》(1932) 《광화사(狂畵師)》(1935) 등을 썼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雲峴宮)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장(學藝部長)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붉은 산》 《태형》《김연실전》등이 있다.

1935년부터 《왕부(王府)의 낙조(落照)》 등을 발표하고 야담사(野談社)를 설립하여 월간지 《야담(野談)》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설 쓰기에 전심하다가 몸이 쇠약해진 후에 마침내 마약 중독에 걸렸다. 병마에 시달리던 1939년 ‘성전종군작가’로 황군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에는 불경죄로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를 지내고, 1944년 친일소설 《성암(聖岩)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에는 장편 역사소설 《을지문덕(乙支文德)》과 단편 《망국인기(亡國人記)》의 집필에 착수하였으나 생활고로 중단하고 6 ·25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에서 작고하였다. 소설 외에 평론에도 일가견을 가졌는데 특히 《춘원연구(春園硏究)》는 역작이다.

김동인은 작중인물의 호칭에 있어서 ‘he, she’를 ‘그’로 통칭하고, 또 용언에서 과거시제를 도입하여 문장에서 시간관념을 의식적으로 명백히 했으며,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이른바 간결체를 형성하였다. 1955년 사상계사(思想界社)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제정, 시상하였으나, 1979년부터 조선일보사에서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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